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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준하 선생님 웃고 계신가요?

션한바람 2013. 1. 25. 16:15

무려 39년 만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강산이 4번이나 바뀌어서야 비로소 누명이 벗겨진 것입니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974년 기소돼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던 고 장준하 선생의 재심이 이루어졌던 24일, 재판부는 유신군사독재시절 자행된 과거의 잘못된 사법판단에 대해 사죄하고 장준하 선생의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생전의 장준하 선생, 오른쪽은 함석헌 선생 출처 : 연합뉴스>


지난 2009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실형선고를 받았던 고 장준하 선생,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9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이날 재판부의 재심판결은 민변의 재심 청구 이후 3년이 넘어서야 이루어진 것입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이 부분 역시 유족에게 사과 했습니다. 3년이 넘도록 재심판결을 위한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이례적으로 재판부는 이날 긴 시간을 할애해서 장준하 선생에 대한 사과와 사죄의 뜻을 밝혔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권위주의 통치 시대에 큰 시련과 옥고를 격은 고인에게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사죄를 구하고, 잘못된 재판 절차로 고인에게 덧씌워진 인격적 불명예를 뒤늦게나마 복원시키는 매우 엄숙한 자리이다. 국가 주권과 헌법 정신이 유린당한 인권의 암흑기에 시대의 등불이 되고자 스스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고인의 숭고한 정신에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유신헌법 투표를 하는 과거의 박근혜 당선인, 그녀는 어디에 표를 던졌을까? 츨처 : 경향신문>


국가 주권과 헌법 정신을 유린했던 유신헌법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박정희 유신군사독재 시대를 '국가 주권과 헌법 정신이 유린당한 인권의 암흑기'라고 표현했습니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인하고, 국회와 국민주권을 부정했던 유신헌법은 말 그대로 '박정희의, 박정희에 위한, 박정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절대권력을 소유한 독재자의 공포정치 하에 헌법의 기본원리인 권력분립주의, 국민주권주의, 사법부의 재판권 등이 심각하게 침해를 받았고, 특히 무엇보다 국민이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은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문제의 '유신헌법'은 국회 해산과 정당 활동을 금지시키는 '10.17 비상조치'로 계엄령을 선포한 뒤 비상국무회의에서 심의해 1971년 11월 21일 국민투표로 통과되었습니다. 



<유신헌법의 공포는, 말 그대로 공포 그 자체였다>


홍사덕 전 의원은 유신이 "박정희 대통령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해 한 것"이라는 망발을 했지만 사실 유신헌법을 만든 이유는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 이후 느낀 정치적 위기감 때문이었습니다. 김대중 신민당 후보와의 표차가 많지 않았고 이후의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신민당이 약진하자 이에 자극받은 박정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미 1969년 10월의 삼선개헌을 통해 대통령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속내를 보였던 박정희이기에 어쩌면 유신헌법은 필연적 수순이었는 지도 모릅니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통해 6년 임기에 연임을 포함, 12년 동안 집권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유신헌법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입법, 사법, 행정부의 3권분립을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켜 개인통치를 강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선거를 통한 대의제도와 삼권분립에 의한 견제 균형의 장치는 유명무실해 졌고, 대통령을 정치권력의 최고 정점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정부형태는 갖추게 되었습니다. 또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크게 후퇴했으며, 박정희 체제에 대한 어떠한 비판과 비난마저 원천 봉쇄시키는 철권통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서슬퍼런 압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투옥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어야 했습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언급한대로 유신헌법의 핵심은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헌법에 명시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허가하거나 검열을 금지한 헌법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였고,  이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어떠한 시도도 결코 용납되지 않았으며 이를 위반하는 국민들은 악명높은 긴급조치(1~9호)에 의해 단호히 정죄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추천하고, 국회 동의없이 긴급조치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사법부 역시 대법원장과 모든 판사를 직접 임명.보직.파면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등 삼권분립의 원리인 견제와 균형은 고사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시스템과 조직이 대통령의 통제 하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대표적 체제 유지용 공안 사건들인 민청학련 사건(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1975)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1979년) 등이 기획.조작되었고 이로 인내 수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거나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1975년 자행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은 지난 95년 4월 한 방송사의 '근대 사법제도 10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현직 판사 315명이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으로 꼽았던 부끄러운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한 해 전인 1974년 7월 11일 당시 비상보통군법회의 제1심판부는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하여 구속 기소된 32명에게 중형을 선고하였고, 이 중 사형을 선고받은 김용원, 여정남씨 등 8명은 1975년 4월 9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지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지 불과 18시간 만에 형을 집행했다는 것,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치고 무섭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일들이 유신체제 하에서는 버젓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유신헌법 하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곧 법이요, 국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신헌법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지난해 대선이 치루어지기 전 유신헌법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계와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었습니다. 민변에서는 이미 2010년 2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민주통합당의 정청래 의원 등 21명은 지난해 9월 28일 '5.16이 4.19혁명 정신을 유린한 군사쿠데타임을 명확히 하는 한편,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은 내용과 형식에서 무효임을 천명하는 유신헌법 무효결의안'을 발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0년 12월 긴급조치 1호는 위헌이라고 명시했을 뿐, 정작 논란의 중심이 되는 유신헌법에 대한 판단을 아직까지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수우익들은 유신헌법이 1980년 제5화국 헌법의 출현과 함께 사라졌고, 제5공화국 헌법은 1987년 현행 헌법이 만들어 지면서 사라졌는데 도대체 유신헌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박정희 유신독재시절에 행해진 인권유린과 민주주의 파괴행위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뒤따라야 하며 억울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신원회복과 피해보상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유신헌법에 대한 사법부의 무효선언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일본이 자행한 과거 제국주의시대의 만행들을 규탄하고, 그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반성과 사과와 참회를 요구하는 것은 이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관계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박정희 유신독재시대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변하지 않는 역사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홍사덕 전 의원의 경우처럼 박정희 유신독재체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세력들과, 이에 편승하고 있는 일부 국민들에게 객관적이고 명확한 역사적 평가와 판단을 법으로 선언하는 것은 아픈 현대사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박근혜 당선인이 국민에게 천명했던 국민대통합과 국민화합을 이루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시대에 행해졌던 과거사의 아픔과 상처들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것은 비단 이해당사자 뿐만 아니라 박근혜 당선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있는 과반에 육박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돌려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대통합과 국민화합은 이렇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준하 선생님 웃고 계신가요?


사법부가 뒤늦게나마 지난 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했습니다. 유신독재시절 정권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에 대한 사과를 받기까지 무려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그동안 장준하 선생은 물론 남아있는 가족들이 짊어져야 했던 고통과 시련의 아주 일부분이 그분들로부터 떨어져 나간 셈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장준하 선생과 유족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유신독재시절 정권에 의해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과 그 유족들에게는 이 숙제들은 천형과도 같은 것입니다. 평생을 두고 반드시 풀어야 하고, 바로 잡아야 할 진실이자 삶 그 자체였습니다. 이번 사법부의 판단이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고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마 장준하 선생도 그 곳에서 지긋이 웃고 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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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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